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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Diary
요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주구장창 읽고 있다. 그녀의 문체는 잔잔하고 소박해서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어떤 생각을 소설이라는 이야기로 재구성해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아닐가 생각 한다. 바다의 뚜껑은 200페이지가 안되는 꽤 짧은 이야기다. 돈보다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한 여자와, 방황하는 조금 어린 여자의 바닷마을 생활기. 두 사람은 한 시즌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단단하게 해준다. 그 후에도 여자는 바닷마을에서 빙수 가게를 계속 이어가고, 어린 여자는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 작은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욕심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여전히 돈에 얽힌 문제에 시달린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의 미카엘은 남자가 쓴 여자의 삶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그럴듯하게 잘 묘사해 내었다는 점이다. 과장이나 환상없이 여자, 아니 사람의 결핍과 마음, 삶을 잘 그려내었다. 그가 얼마나 주의깊게 사람을 관찰하고 대해왔는지,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 너무도 잘 나타나는 책이다. 이 책은 한나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 한나의 팔을 잡아준 계기로 이어진 미카엘과 한나의 만남을 시작으로 둘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곧 아이를 출산한다. 미카엘은 한나보다 4살이 많은 연상의 남자로 그려지는데 굉장히 착하고 성실한 남편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한나는 늘 어딘가 결핍되어 무언가를 갈망하고, 현실과 꿈의 세계를 오간다. 이 이야기에서 놀란 점은 여자의 심리를 잘 ..
문득문득 생각나는 책이 있다. 아주 짧은 책이었다. 한번 보고 나면 여파가 강력하게 남아, 잘 잊혀지지 않는 책이었다. 희생인지 사랑인지, 희생이라면 사랑이면 어떤 관계에 어떤 사랑과 희생을 의미하는 건지 생각하게 되는 책. 아니 그냥 이게 '사랑' 이라는 정의일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정말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바라기만 하는 아이. (절대 크지 않는 감사할 줄 모르는, 받는데에만 너무 익숙한, 나중에는 미워보이기까지 하는 아이) 이야기는 이렇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어린아이가 있었다. 어린아이는 나무를 좋아했다. 나무에 매달려 놀고 나무 그늘에서 쉬고, 나무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귀여워 나무는 아이와 놀아주며 아이에게 사과도 주고, 그네도 태워주었..
짠. 게을르고 게을러 몇 편에 나눠쓰는 무라사키 하루키의 소설 리뷰. 소설 가뭄에 담비처럼 내린 믿고 읽는 소설이건만 이조차 잘 읽히지 않는건 더이상 작가를 탓할수는 없겠지. 크림. 지금까지 읽었던 대목중 가장 재미있었는 부분. 어떤 추상적인 형태도 반드시 소설로 풀어내는 미친듯한 천재성이 살짝 돋보이는 부문. "중심이 여러개,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중심을 갖지 않는 원" 그런 원을 상상하기란 불가능 했다.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일인칭 단수, 크림의 일부 원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나는 마침 전화를 받았고 상대에게 물었다. 중심이 여러개,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중심을 갖지 않는..
한참 소설의 재미를 알아갈 무렵, 무려 호주에 있는 도서관에 몇 안되는 ‘한국어 소설’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읽었던 것 같은, ‘빵가게 습격 사건’이 실린 단편 소설집이었다. 책을 집어든 자리에서 완독한 나는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천재구나. 그 후, 시간이 꽤 지나 코로나가 터져도 재밌는 소설은 조처럼 쏟아지지 않는다는 걸 실감할 때 쯤, 단비처럼 단편 소설집이 발행되었다. ‘일인칭 단수’ ...? 이름 참 묘하다. 굳이 말하자면, 딱 떠올렸을 때 일인칭은 하나다. ‘나’ 그러니 단수일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생각하면 ‘우리’도 있나? 그렇다면 이건 오롯이 ‘나’ 를 의미하는 말이었을까. 일인칭. 단수. ‘나’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을 칭하는 말일까. 우리 중에 너..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간다. 시간이란 참 재미있는 속성이 있다. 내가 무얼 하든 안하든 모든 시간이 똑같이 흐른다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우리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 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무언가를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나는 벌써 청소년을 지나 이십대 후반의 어른이 되었다. 아직도 그 울림이 이상하다. 나한테 써도 되는 말일까? 어릴 적 내게 '어른'이라는 건 꽤 큰 존재였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생각했던 그 어른들이 그날의 어린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냥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안다. 이것 말고, 내가 그 시절의 어린 나와 다른 점이랄 게 있을까? 아직 어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린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는 어릴 때 듣기만 했던 이야기인, 나..
드라마의 원작으로 알려진 이도우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사실 한국에 들어와 자가격리를 시작할 당시 베스트셀러로 떠올라 있던 것을 아무 생각 없이 구입했다. 서점이었다면 한두문장은 읽고 결정했겠지만, 나는 짐도 풀지 않은 오피스텔에 혼자 격리중이었고,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었다. 호주에서 가져온 노트북은 플러그가 맞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할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게 없으니 지치지도 않았고 잠이 들어도 아침일찍 깨고 말았다. 이튿날엔가, 나는 서점에서 책 열댓권을 주문했다. 이 책은 그 중 하나였다. 사실 책을 산 당시에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처음 몇 장을 읽고는 덮어버렸다. 당시에는 ‘문체가 나와 맞지 않아!’ 하는 어줍잖은 이유였다. 무엇보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듯한 굿나잇 책방의 ..
어린 시절, 나는 고전을 많이 읽었다. 학교에서 자습을 시키거나 쉬는 시간에 할 일이 없을 때, 그리고 유독 친구랑 어울리지 않고 혼자 나돌던 시절 고전을 읽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때 한참 원서나 고전을 들고 다녔는데, 생각해보면 그 내용 자체에 빠져들었다기 보다, 뭔가 어려운 책을 읽고싶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어린나이에도 퍽 재밌었다. 샬롯 브론테의 언니가 쓴 오만과 편견을 읽고도 나는 제인에어를 더 좋아했다. 언니는 오만과 편견을 더 좋아했는데, 언니가 언니고 내가 동생이기 때문일까? 언니와 동생의 시선 차이가 잘 녹아나서 선호도의 차에 영향을 미친걸까. 그런 실없는 생각도 했더랬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 다시 제인에어를 읽었다. 내게는 사라지지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내가 비행기 안에서 읽은 몇 안되는 책이다. 호주에 살면서 꽤나 자주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했던 나는, 꼭 책 한권씩을 읽고는 했는데, 그런 책 중 하나였다. 특히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친한 언니의 부탁으로 한국에 들려오는 길에 사다 주었던 것이다. 책을 사들고 비행기에 올라 편 자리에서 읽고 덮었던 책이다. 언니는 히가시노 게이코의 팬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 때 까지 이 작가에 대해 커다란 감흥이 없었다. 워낙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로 알려져 있어, 작품은 몇 개 알고 있었고 읽으려고도 해 보았지만, 그녀의 유명한 작품들은 대게 당시의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내용의 전개는 흥미로웠지만 다소 '템포가 느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벌써 꽤 오래 지난 것 같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는 스미노 요루 작가의 책을 읽고 '참 풋풋하다'생각했었다. 뭐랄까 깊이 있는 작가에게서 나오지 않는 어리숙함과 풋풋함이 있었다. 그 풋풋함이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첫사랑이라는 소재와 어우러지며 괜찮은 시너지를 내었다. '췌장을 먹고 싶다'는 자극적인 제목부터, 그게 로맨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뻔한 메타포. 게다가 소년이 보는 티비에 스치는 지나가던 뜬금없는 '묻지마 살인사건'의 뉴스는 너무나 뻔한 복선이었다. 책을 반도 읽기 전에 결말이 보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원래 대부분의 이야기는 다 알고도 보는 거니까. 그런의미에서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이야기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부분은 뻔한 독자의 기대를 만족시킬만했기에 어린감성을 ..
오랜만에 보는 책, '인생 수업'에 대해. 처음 이 책을 접한 건 지인의 추천 때문이었다. 본래 화가 많던 그 지인은 결국 '화병'까지 얻어 원인모를 가슴통증과 뼈의 변형까지 나타났었다. 백방으로 용하다는 곳은 다 가보았지만 도저히 원인을 밝혀낼 수가 없었고, 결국 한의학에서는 '화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백방으로 알아보던 중,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된 지인은 책을 읽으며 화병을 고쳤다고 했다. 이 책에는 생에 마지막에 다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한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녹아있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모두가 태어나서 한번쯤은 내가 이 생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으려 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신기해서, 인생의 까닭이 없으면 가치가 없는 인생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
또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고 베스트셀러를 뒤적이던 중이었다. 눈에 띈 익숙한 표지. 몇 년 전 호주에서 지인에게 선물받아 읽었던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다. 당시 한국에 다녀온 지인이 있었는데, 선물을 사다줄지 물어보기에 ‘재미있는 소설이 읽고싶다.’ 고 답했다. 그는 돌아오던 날, 작은 선물과 함께 이 책을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던 그는 간혹 초고를 보여주고는 했다. 그의 초고는 불륜 범죄 스릴러 였는데, 시간상 순서가 뒤죽박죽 되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 꼬아놔서 도통 누가누구인지 분간이되지 않았다. 남자 하나 여자 둘 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였는데 어떤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다. 커다란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지만 너무 뒤죽박죽이라 읽기 어렵다고 솔직히 말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