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Diary
겨울에 따듯한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본문
드라마의 원작으로 알려진 이도우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사실 한국에 들어와 자가격리를 시작할 당시 베스트셀러로 떠올라 있던 것을 아무 생각 없이 구입했다. 서점이었다면 한두문장은 읽고 결정했겠지만, 나는 짐도 풀지 않은 오피스텔에 혼자 격리중이었고,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었다. 호주에서 가져온 노트북은 플러그가 맞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할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게 없으니 지치지도 않았고 잠이 들어도 아침일찍 깨고 말았다. 이튿날엔가, 나는 서점에서 책 열댓권을 주문했다. 이 책은 그 중 하나였다.
사실 책을 산 당시에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처음 몇 장을 읽고는 덮어버렸다. 당시에는 ‘문체가 나와 맞지 않아!’ 하는 어줍잖은 이유였다. 무엇보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듯한 굿나잇 책방의 일지가 거슬렸다. 블로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있다고. 나는 책을 읽고 싶은거람 말야!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그 많은 책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서점에 베스트 셀러는 비슷한 책들이 저리매김하고 있다. 그나마 자주 바뀌는 책은 모두 자기개발서, 혹은 전에 한번 베스트셀러로 올랐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최근에 쓴 많은 자기개발서를 포함해 올해만 책을 다섯권은 넘개 사보았지만 여전히 마땅한 소설을 찾지 못한 채였다. 이 시기에 발행된 단비같은 하루키 작가의 일인칭 단수는 아껴두는 중이다.
첫 몇장은 여전히 커다른 끌림이 없었다. 나처럼 단편소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장편소설은 너무 긴 템포를 가졌다. 그래도 잔잔하고 평화롭고 지루하기도 해서, 마음이 복잡할수록 손이 갔다. 그렇게 한장한장 아무 생각없이 시간 날 때 마다 읽었다.
장편소설의 장점. 읽을수록 빠저든다. 여기 나오는 해원이가 은섭이가 꼭 내 이야기 같고 영화를 보는 것 같고 굿나잇 책방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곳에 존재하는 제 삼자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 후반부의 몰입감과 끝에오는 아련한 여운은 단편소설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공항가는 길’이라는 드라마가 많이 생각났다. 아마 작가의 이름 때문인 것도 같다. 공항가는 길에 남자 주인공은 ‘도우’ 였다. 성도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하도 ‘도우씨’ 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많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그리는 사랑. 특히 은섭이 하는 풋풋하지만 바르고 어른스러운 사랑(이게 가능한 걸까)은 공항가는 길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점은 이들은 불륜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해피엔딩 이라는 점.
이 작품에 나오는 ‘임은섭’ 남자주인공은 퍽 순수하고 바른 청년이다. 거기다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서른이 되도록 첫 키스를 못한 그는 옛날 해원이 가출하던 날 반한 후로 그녀만을 좋아한걸까?
한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 이토록 어른스럽고 침착할 수 있다니. 따듯하고 바른 사람. 세상을 꼬아보지 않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고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그려진다. 아아. 어디 이런 남자 없나.
목해원. 이름도 특이한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러고보면 그녀의 집안은 예술의 피가 흐른다. 이모는 베스트셀러 작가, 자신은 화가.
현실에 벽에 부딫히고 한없이 작아지던 때에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와 은섭을 만난다. 은섭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그와 연애를 하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들어나는 그녀의 가정사.
처음부터 등장했던 그녀의 이모. 이모는 특이한 사람이다. 첫 작품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건맘 두번째 작품을 쓰고 절필한다. 그녀는 해원과 깊은 유대가 있었는데, 항상 방탕하고 멋대로이면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한쪽눈이 거의 실명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치료할 수 있던 것을 병원에 가지 않고 방치한 탓이라 했다. 병원은 절대 가지 않겠다며 다소 이상하게 비치는 그녀. 솔직히 처음에는 정신이 조금 아픈 사람인걸까 생각했다.
해원과 은섭의 달달하고 따듯한 연애가 시작되고, 그녀의 가정사도 서서히 들어난다. 아니, 정확히는 마지막에 확 들어난다. 이건 반전이라기 보다 응? 뭐지? 싶은 느낌이 조금 있었다. 내가 워낙 연애애만 집중하고 있던 탓일까.
은섭은 독립출판을 꿈꾸며 굿나잇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모의 재개를 두고 경합을(?) 벌이게 된다. 은섭의 친구가 하는 프로젝트에 작가를 위해 방을 빌려주는 취지로 문학의 거리?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모는 절필했다며 거절하고, 은섭과 아이들은 하기를 바랐다. 결국 나뭇잎 소설이라는 장르, 단편소설보다도 훨씬 짧은, 영화로 치자면 옴니버스? 를 만들고 은섭이 이기면 작가 활동을 재개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모는 소설을 짖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글로 써 오지 않았다. 그러고는 짧은 소설을 들려주고 자신은 은퇴하겠다 선언하며 허무하게 경합이 끝난다.
그리고 온 한 통의 메일. 이제서야 소설을 보낸건가?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심 바랐다. 이모가 다시 재개하기를.
그리고 밝혀지는 해원의 가정사.
그 후 해원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화방을 연다. 은섭과 해원의 관계는 계속된다. 그들은, 아니 은섭은 정말 우직하고 따듯한 사랑을 한다. 예쁜 사랑을 한다.
그 후 공모전에 당첨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해원은 고향으로 내려와 은섭과 재회한다. 그들은 조금은 더 현실적이고 안정된 모습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그들은 오래오래 키스를 나누었다.
각박하고 고독한 현실, 그럼에도 피어나는 사랑, 한 사람에 인생을 둘러싼 많은 해프닝들이 모두 엮여있는 그야말로 굉장히 현실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이 아름다운건 이 모든 이야기를 담담히 그리고, 또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참 어여쁘기 때문일 것이다. 은섭도 보영도, 이모도, 해원도 그들의 성격과 심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모든 해프닝에도 마음이 따듯해질 수 밖에 없는 소소하고 소소하지 않은, 따듯한 삶의 한두 계절을 담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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