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Diary
크림,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본문
짠. 게을르고 게을러 몇 편에 나눠쓰는 무라사키 하루키의 소설 리뷰.
소설 가뭄에 담비처럼 내린 믿고 읽는 소설이건만 이조차 잘 읽히지 않는건 더이상 작가를 탓할수는 없겠지.
크림.
지금까지 읽었던 대목중 가장 재미있었는 부분.
어떤 추상적인 형태도 반드시 소설로 풀어내는 미친듯한 천재성이 살짝 돋보이는 부문.
"중심이 여러개,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중심을 갖지 않는 원"
그런 원을 상상하기란 불가능 했다.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일인칭 단수, 크림의 일부
원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나는 마침 전화를 받았고 상대에게 물었다. 중심이 여러개,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중심을 갖지 않는 원. 뭘까?
그런게 어딨어?
나는 책을 읽으며 내심 답이 나오길 기다렸다. 무엇이든 명료한 답. 아니, 적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그런 '넌센스 퀴즈'이길 바랐다. 이 책에 그런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겠다 싶고 하지만 모르겠는 무수한 것들을 이 퀴즈에 비유했다.
알 듯 모를듯, 그래서 결국 우리가 만난 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그런 '원'으로 받아들여 버린다는 이야기.
신앙, 외계인같은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일들.
그러고보니, 최근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3차원을 사는 우리들은 4차원을 볼 수 없고, 점, 선, 3차원의 도원이 그렇듯 4차원의 세계에서 보면 우리는 그저 쭉 이어진 하나의 입체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렇게 들으니 그런 듯도 같고, 하지만 3차원을 사는 우리에게 4차원의 개념이란 것이 소용이 있을까. 우리가 3차원밖에 볼 수 없다면, 결국 우리가 아는 그 3차원이 전부가 아닐까. 아니, 전부인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아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재'. 하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주제'.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환각. 경험..? 읽는 동안 단 한페이지도 접지 못한, 전혀 감명받지 못한 이야기.
학창시절 상상했던 일이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졌었다면. 그걸 시간이 지나 현실에서 마주했다면.
우리는 모두가 살아가고 동시에 죽어가고 있던 존재. 사후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한 프레이즈를 계속해서 반복했지'
'하루하루 살아가며 동시에 죽어 있었어'
모두가 알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진리란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다.
일단 태어나면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리라는 걸 머지 않아 알게된다. 그 죽음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죽는게 다행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다.
그 미련덕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참 묘한 일이다.
내가 살면서 한가지 믿는게 있다면, 상상했던 일은 너무 터무니 없는 상상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그런 곳이다.
상상하면 이루어지는 곳. 꿈의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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