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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 by 강화길 - 2020 제 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본문

Reading Diary/소설

음복 by 강화길 - 2020 제 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Lamore 2020. 5. 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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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국내도서
저자 : 강화길,최은영,김봉곤,이현석,김초엽
출판 : 문학동네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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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飮福)'은 제사를 지낸 뒤에 제사에 쓰인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뜻과 '음복(陰伏)'이라는 엎드려 숨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시댁에서 제사를 지낸 후에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이야기를 며느리의 시점에서 써내려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의 예정된 주인공이었던 남편은 시댁에서 일어나는 눈치싸움에서 쏙 빠진 채 눈치가 없는 척 무던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 그의 시어머니는 할머니나 고모(남편의 누나)가 그에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그를 사랑하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면 했고, 그걸 모르는지 모르는 채 하는 것인지 눈치없이 행동하는 남편은 여전히 어머니의 그들에 숨어있는 (혹은 숨어있는 척 하는) 아들 같이 느껴진다. 

 

젊은 작가상 수상 모음집에는 각 소설 뒤에 평론가의 감상같은 것이 함께 따라온다. 고모가 짜증을 내어도, 치매를 맞은 할머니가 젊은 날의 그를 한심하게 보아도, 금세 맑아지는, 화자(며느리)가 좋아하는 남편의 태평한 얼굴은 과연 권력의 상징이었을까. 화가 많은 집에 유독 태평하고 맑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주위에서 화를 내어도 대수롭지 않게 대처하며 금세 맑은 얼굴로 돌아온다. 하나하나 속상해하거나 화를 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그런 감정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 아니라, 그들의 출구에 가까웠다. 그들의 속상함과 못마땅함이 내 탓이 아니지만 그들의 감정까지 내가 좌지우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화를 내면 사과하고 못마땅해 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렇지 않는다면 서로 언성을 높여 싸우기 밖에 더 하겠는가. 화목하지 않은 때에 화를 잠재우기 위한 그들의 무단한 노력이 있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똑 닮은 남편에게 물건을 짚어 던지며 분노한다. 그런 할머니를 타이르는 것은 고모의 몫이다. 떠나기 전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들렸을 때, 할머니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네 까짓게 무슨 그런 대단한 공부를 한다고..'라는 식의 무시를 한다. 고시를 준비하던 그날의 남편에게 말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굳어진 그는 곧 다시 맑은 표정을 지어보인다. 화자의 '내가 좋아하는 그 표정'은 그런 남편의 지난날을 어렴풋이 살피던 그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시어머니는 떠나는 그녀에게 '아들은 모르게 해달라'는 문자를 보낸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그런 나쁜 마음들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들의 화가 그를 향하는 것을 그가 모른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 아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의 어머니는 맑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아들이 사실은 모든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셨을까. 

 

순간 굳어졌던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처음부처 그리 무던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무던한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 그가 모르기를 모르는 어머니가 있었고, 그를 미워하는 누나가 있었다. 여전히 집안에 상황을 외면하는 그는 집안에 모두로부터 보호받는 존재였고, 도망친 존재였지만, 또한 여전히 그들을 마주하며 그들 또한 이 상황을 보다 현명하게 넘기기를 바라는 존재였을 뿐일지 모른다. 소설에서 화자는 '진정한 악역은 남편'이라고 말한다. 모두의 화가 그를 향하는 이유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 척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희생하고 있다 착각하도록 두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는 악역이 필요했다. 고된 상황과 원치않는 결말을 견디며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게 남편이 맡은 역할이었다. '가족을 희생시키며 가족에게 보호받는, 혼자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이었다. 가족에게 그는 혼자 아무것도 모른채 평온하고 행복해야 했다. 그래야 마음놓고 그를 원망할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앞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주어진 악역을 다 하기 위해, 그는 무던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자신을 향하는 고모의 화를, 할머니의 화를 감내한다. 자기도 모르게 굳어진 얼굴을 이내 평온하게 되돌리며 무던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는 그를 무례하게 대하는 고모를 생각이 깊고 진중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녀에 누나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과 그를 다르게 대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를 진정한 악역이라고 말하는 화자는 그런 그를 좋아한다. 이 집에는 악역이 필요했고, 지금은 그가 그 악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을 향하는 무례한 언행, 물건을 집어던지는 폭력적인 행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를 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사과하며 맑고 평온해 보이는 남편은 악역이고, 비겁하고, 애틋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악역을 계속 해 나가는 것, 그게 그의 최선이다. 무례하게 구는 그녀의 고모에게 그는 화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결혼까지 한 건장한 성인인 그가 화를 낸다면 아마도 눈앞에서는 그런 무례한 언행을 더는 안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가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 그런 상황에 당연하게 이어질 것 같은 그런 선택지들은 무수히 많다. 그가 이런 악역을 자처하게 된 배경을 상상해볼 때면 그가 대단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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