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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Diary/소설

다시 읽는 어린왕자

Lamore 2020. 9. 2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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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여행 에세이를 쓰며 '어린왕자'의 삽화를 함께 넣었다. 그 때 봤던 사막의 느낌이 어린왕자를 읽으며 상상했던 그 사막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삽화를 넣기 전에 혹시 몰라 저작권을 알아보다 이미 50년이 흘러 저작권이 만료되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지금 막 나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내용을 담은 이 동화가 벌써 50년이 흘렀다. 아름다운 동화를 쓴 작가는 동화를 완성한 1년 뒤인, 1944년, 40대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 이름은 '어린 왕자'의 작가로 세계에 알려졌지만, 그는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공군 장교였다. 때문에 그의 생은 '비행'과 늘 관련이 있어 왔고, 실제로 어린 왕자에서 그랬듯, 비행기의 고장으로 표류하게 된 사건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의 사망은 비행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되었기에, 그는 더욱 독자들의 마음속에 더욱 미스테리하게 남아있다.

 

어릴적 어린 왕자를 읽고 푹 빠져 그 작가의 생애를 열심히 찾아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작가는 정말 어린 왕자를 만났던게 아니었을까. 하고 바랐다. 그의 행방이 묘연한 것은 그가 어린왕자의 행성으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라 믿었다.

 

 

 

 

 

그리고 시간이 십년을 훌쩍 지나, 어느덧 동심일랑 잊고 살던 나는 어릴 적 그 마음의 행적을 찾아 동화를 다시 들여다 본다. 그럴 때 마다 동화는 내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동화에는 너무 많은 '현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표본이 부족해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어린왕자가 행성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이 생을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가 첫 행성에서 만나는 늙은 왕은 모든 사람을 '신하'로 보며 늘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명분'을 중시한다. 그렇게 군주로서 나름 훌룡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그는 사실 외로움이 많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떠나는 왕자를 외무대신으로 임명하며 보내주는 모습은 끝까지 명분을 갖추어 그를 보내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우리 주변에서 보는 사업가나 고위 정치인, 또는 국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지시할 때 '명분'을 중시한다. 단순히 껍데기를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신하들을 납득시키기 위함이다. 우리라는 사회는 법이라는 체계 안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숙고하며, 때로 고민을 무척 고독하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쌓여만 간다.  그들은 아끼는 자들이 범법을 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여 도와준다.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법을 개정하는 등 그들이 원하는 바를 '합법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 마치 어린 왕자가 떠날 때 외무 대신으로 임명해 그에게 명분을 마련해 준 것처럼 말이다.

 

 

허영심 많은 남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대변하듯 보인다. 그는 칭찬만을 받아들이며 다른 말은 듣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에 어린 왕자는 '흥미를 잃고' 떠나고 만다. 간혹 멋진 차림과 태도로 치장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칭찬하는 말에는 겸손해하며 예를 갖추지만 비판하는 말은 무시하거나 거세게 받아친다. 결국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멋들어진 모습과 겸손한 모습에 호의를 가지지만 그들의 진심어린 충고를 질투나 비난으로 만들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겠습니다.'식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지쳐 더이상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신기한 것은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이런 현상이 더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과거에 오만했던 자신의 단편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비난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 다른 의견은 듣고싶어하지 않는 사람, 작은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가시를 곤두세우는 사람은 가까이 하기 영 피곤하다. 

 

술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부끄러움을 잊고자 다시 술을 마시는 술꾼은 이상을 쫓아 살아오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모순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도박꾼'이 그 예다. 용돈이나 벌고자, 그냥 취미로 손을 댓다가 짭짤한 돈의 맛을 알아버린 도박꾼은 계속 도박을 한다. 어느새 가진 돈을 다 탕진하고 빚만 남은 도박꾼은 그 빚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빚을 진다. 끊임없는 굴레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희망을 갖는다. 자신은 다르다고. 이 도박은 성공할 수 있다고, 한번만 잭팟이 터지면 되는 일이며, 반드시 일어날 거살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풀려진 암담한 현실을 도피한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계속 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작은 치부를 감추려 시작한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또다른 치부를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진다. 결국 치부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거짓말은 끝날 수 없다. 부끄러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술을 마시기를 멈출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다음 별에서 만난 사업가는 '돈'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한다. 사업가는 하루종일 자기가 가진 별을 세어 서랍에 저장하는데, 계산하느라 어린 왕자가 하는 말에는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으며 바쁜 척 한다. 어린 왕자는 그 많은 별들을 소유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묻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돈을 모으기만 하고 쓰지는 못하는 구두쇠가 떠오른다. 돈은 결국 물물교환의 수단이고 목적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그래서 단순히 모으기만하고 가지고 있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복잡하게 생각하면 '자본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부자가 되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현재의 시간을 아끼며 살아간다. 어릴 적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너희는 지금 일분 일초가 아까워!' 라는 말. 마치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일분 일초를 지금 내가 쓰는 것 처럼 써서는 안된다는 충고 같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말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그렇게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을까? 그 시간을 끊임없이 저장해 미래를 위해 저금해두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에는 결국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 할 것이다. '지금'보다 '중요한 시간' 같은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을 서랍속에 넣기 위해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일을 반복하는 성실한 사람이다. '별의 주기가 빨라져' 이제는 '초단위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그는 그럼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실히 일한다. 

우리는 산업혁명이후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하루를 꼬박 걸려 이동하던 거리를 이제는 몇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고, 며칠을 걸려 처리하던 일을 몇분안에 처리할 수도 있다. 별의 주기가 빨라지듯, 우리의 사회는 더욱더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박자에 맞춰 쉴새없이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간다.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꼭 사회에 적응하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과거에는 일 년, 한 달, 몇 주에 걸쳐 받아들여왔던 새로운 문물이, 이제는 하루, 몇시간에 걸쳐 등장한다. 환경의 속도에 따라 우리도 점점 더 바삐 살아간다. 

분명 사람들의 삶을 '유복하게'하기 위해 발전시킨 문명이 사람들의 삶에서 '여유를 앗아가는'의아한 현상.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는 지리학자는 유일한 '탐구형 인간'이다. 이 사람은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직접 탐험하지는 않는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섬에 들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아가는 사람.

정말 의아하게도 현재 우리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유독, 코로나가 퍼져 방구석이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행성에서 컴퓨터를 두드리며 정보를 흡수하기만 할 뿐 직접 탐험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못한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결국 세상에 만연하고 만다면 우리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지리학자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러고보면 마지막의 세 행성은 마치 사회 변화의 모습을 대변하듯 보인다. 돈에 빠져 허주적대던 자본주의(Capitalism), 끝없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허우적대는 현대시대의 모습, 그리고 지금 이렇게 방에서 혼자 정보를 탐닉하는 우리의 모습. 

 

 

정말, 언제 읽어도 놀라운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린왕자하면 떠오르는 애절한 장미와 언제까지고 왕자를 기다리는 사막여우,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운 뱀 등, 감정과 심리를 다룬 섬세하고 손꼽을만큼 아름다운 명대사가 가득한 어린 왕자 이지만, 나 역시 감동적인 이들의 이야기에 취해 있었기에, 그 때는 전혀 중요하게 생가하지 않았던 다른 만남들을 주로 풀었다.

 

 

작가는 어린 왕자를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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