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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Diary/소설

채식주의자

Lamore 2020. 8. 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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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표지


한 번 읽으면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책,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한참 이 책이 유명했을 때, 나는 소설에 관심이 없었다. 쏟아져나오는 자기 개발서와 비문학을 읽느라 여념이 없어 소설 쪽은 처다보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이년 전 쯤, 한 참 한국 책이 고팠을 때 같이 강의를 듣던 오빠에게 ‘한글 책 있으시면 교환하실래요?’ 하고 넌지시 물었다. (물론 교환해서 읽고 돌려준다는 의미였다.) 당시에 나는 아마 이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이나 파울료 코엘료의 ‘불륜’을 빌려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읽게 된 한강의 채식주의자. 당시에는 공부하랴 돈 벌랴 시간이 없어,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었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소설은 몰입도가 엄청나다. 빠져들면 내용이 쉽게 가시지 않고, 책을 쉬이 덮을 수 없다.
그렇게 쉬는시간마다 꺼내들고 내리 읽었다. 짬짬히 읽으니 삼일정도 짜투리 시간의 정독으로 끝을 봤다. 지금도 그 때 물결처럼 잔잔히 번지던 충격이 (감동이 아닌 충격이) 생생하다.

책은 총 세 부로 나뉘어져 있다. 첫번째는 ‘채식주의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화자는 채식주의자 본인이었는지 남편이었는지 그랬던 것 같다. 그녀(채식주의자)는 어느순간 동물을 먹는 것을 혐오하게 된다. 어떤 아주 특별한 계기랄 건 없었다. 사실 동물보호 단체의 영상이나 활동을 보고 고기를 꺼려하게 되는 사람은 있지만 이 글의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반응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입에도 대지 않을 만큼 ‘갑자기’ 바뀐다. 식성 뿐 아니라 성격도 함께 바뀐다. 주변에서는 그녀를 살짝 아픈 사람을 보듯 바라본다. ‘병적인 반응’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반응은 실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되어가며 점점 일상에서 벗어나는 그녀의 행동도 그러하고, 사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채식주의자’ 라는 건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자, 변해가는 그녀의 ‘도입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년이 흐르고,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번째의 화자는 채식주의자 언니의 남편. 형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번째 챕터가 가장 충격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던 탓에 기억이 가시지 않는다. 이 시점에 채식주의자인 그녀는 거의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 정확히는 아프다기 보다 ‘비 정상’인 사람이었다. 모두가 동의하는 ‘정상’의 범위에 벗어나 있는 그런 사람. 그녀는 사회화가 덜 된 하얀 백지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생각하는 도덕과 경계, 그 관습을 모두 깨끗하게 지워버린 모습이었다. 악하거나 아픈게 아니라 그냥 정말 ‘백지’같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인간으로서의 자제를 망각한 그는 예술과 이성, 욕망과 자제력, 그 모든게 혼란스럽세 어그러진 혼돈속에 욕망을 실현하고 만다. 예술을 위해? 욕구를 위해? 하지만 분명, 자신만을 생각한 행위.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이 쉽게 가시지 않는.. 그런 단락이었다. (그는 결국 체포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지막 챕터는 채식주의자의 언니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채식주의자는 이제 백지를 넘어서 ‘무無’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식물처럼 물만 마시던 그녀는 스스로는 이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며 먹기를 거부한다. 억지로 무언가를 먹이려하면 발버둥치며 자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식물이 말라 부서져 흙으로 돌아가듯 죽는다. 여기서 그녀는 죽는다는 표현보다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죽는 듯 보인다’에 가까운데, 꼭 어린왕자가 별로 돌아가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내가 읽은 채식주의자는 자연에서 사회화를 거쳐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 다시 사회화를 거치기 전, 아무런 선입견도, 관점도 가지지 않은 백지의 상태, 그리고 곧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분명 ‘아프다’고 하겠지만, 사실 책에서 그녀는 아프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그녀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처 백지로 돌아갔을 뿐이다. 갓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혹은 자연의 손에, 신의 손에 길어져 인간사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 가깝다. 상식밖의 그녀의 행동에는 어떤 악의도 없다.
그녀를 탓할수도, 그렇다고 그런 그녀를 살리고자 그냐에게 음식을 먹이려는.. ‘치료’를 해보려는 사람들을 탁할수도 없다.

어느 한 쪽이 맞다고 할 수 없는 논제는 항상 존재하고 또 존재하고 있다. 합법적 자살유도제가 가능한 국가가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지는 우리 모두가 가져가야 할 논제다. 우리는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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