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Diary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본문
소설 불황이다. 서점에 베스트 셀러는 재태크와 돈 버는 법으로 가득하고, 자기개발 도서가 한가득이다. 소설이 베스트셀러를 꽉 채우고 있을 때가 언제였던가. 지금도 소설을 찾는 나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일 게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같은 에세이'를 소개하려 한다. 몇 번 읽어도 재밌어서 빠져들고 소설을 읽듯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운 책. 하야마 아마리의 자전적 에세이인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이 에세이는 읽는 내내 '이게 정말 에세이라고?' 싶은 의심이 들 만큼 소설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제부터 *줄거리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인생을 넋놓고 살았던 아마리는 그동안 기대를 품고 열심히 사겨온 남자에게 차이고 빈 털털이가 된다. 변변한 직장도 없고, 미래를 꿈꾸던 남자와의 관계도 끝난 그녀는 29살을 맞고, 돈을 모아 1년뒤에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을 한 뒤 죽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스스로 내기를 합니다. 29살의 마지막 5일. 그녀가 도박에서 이기면 더 살 것이며 지면 자살하기로 한다. 그리고 라스베가스에서 쓸 돈을 모으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낮에는 파견사원으로, 밤에는 호스테스로 일하며 돈을 모은다. 좌절하던 당시 아마리는 70키로에 가까운 살찐 여자로 나오는데, 그럼에도 호스테스일을 할 수 있다. 일본의 문화를 알고 있다면 이해할 것이다. 이건 비현실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녀는 '아마리'라는 가명을 사용한다. '남은 것, 여분'이라는 의미다. 쓰고 남은 '자투리'를 뜻한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쓰고 남은 자투리 라는 뜻에서 이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호스테스로 일하며 남자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 상류 세계를 엿본다. 달콤하지만 1년후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안주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일을 이어간다. 틈틈히 영어와 도박하는 법도 공부한다.
밤낮으로 일하는 동안 살이 빠진 그녀는 이제 더이상 뚱뚱이가 아니다. 주변에서 예쁘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누드 모델의 일을 제안받는다. 평소같은 그녀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는 어차피 얼마 살지 않을 작정이다. 1년뿐인 인생. 그녀는 누드모델 일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그녀는 쓰리잡을 하며 남은 날을 보내고 대망의 날이 찾아온다.
라스베가스로 간 그녀는 카지노에 머물며 미친듯이 마시고 쓴다.
서른 살.
호텔방에서 정신을 차린 그녀는 돈을 센다.
그녀의 도박은 성공했을까?
이 이야기는 소설같은 삶의 자전적이야기를 닮고 있다. 그녀는 그 후 가명을 버리고 재무설계사 자격을 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자기개발서처럼 읽힌다.'고 하지만 나는 소설같은 에세이로 읽었다. 그녀는 친절하고 섬세하게 자신의 생을 묘사했다. 마치 소설가가 소설을 소개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이야기에서 그녀는 단 한 마디도, 나도 그랬으니 너도 포기하지마!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일이 있었다. 이랬고, 이랬다. 지금은 이렇다. 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녀의 방식은 위험천만하다. 도박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겼으니 망정이지 졌으면 어쩔 뻔 했는가?
5달러다. 5천원. 5천원으로 그녀의 삶은 생존과 자살 사이를 오갔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자기개발서로 읽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마리같은 일을 겪지 않고도 1년후 아마리같은 삶을 사는 편이 좋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살고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스스로를 개발하면서 스스로 인생을 주도하며 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남자에만 의존하는 여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게 있다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포인트일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전환점이 한번쯤은 찾아온다고 믿는다. 아마리에게는 그게 인생을 건 도박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혼같은 불행한 사건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행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인생의 전환점을 '위기'에서 '전환점'으로 만드는 핵심은 '모험'이다.
그녀는 평소에 자신이라면 하지 않을 많은 일들을 하며 돈을 모은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많은 것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뿐인가? 스스로와의 도박이라는 극적인 이야기를 완성시킨 아마리는 나중에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가 된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그녀가 이기지 않았다면 어땟을까?
나라면,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면 이야기의 결말을 조금 바꾸어 근소한 차로 이기고 새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바꾸어 책을 냈을 것이다. '이겼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전환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을 겪고 아찔한 도박을 한 그녀가 설령 근소한 차이로 졌다고 해도, 나는 결말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모두 탕진하고 완패했다면 이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이 성공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건, 이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온 시점에, '자전적 에세이'라는 점에, 이미 이 도박의 결과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야기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억지스럽지 않은 전개, 결말. 이해가 가는 등장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동기부여.
많은 사람들이 자기개발서로 읽는 이유는 이 책을 읽고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나는 이 여자처럼 벼랑 끝은 아니잖아. 라는 생각일 수도 있고, 그래, 나도 한번 도박을 걸어보자. 라는 생각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막연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일 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엇이든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자기개발서로 취급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에세이를 읽고 어떤 기분을 느낄지는 독자의 자유다.
소설처럼, 수필처럼 읽고, 어떤 지침을 얻기보다 어떤 감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게 순간 푹 빠져 읽는 재미든, 내가 살지 못했던 삶을 엿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든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기보다,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라는 느낌으로 편하게 읽기를 바란다.
그래도 괜찮을 만큼, 이 책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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