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Diary
일인칭 단수, 돌베개에. 본문
한참 소설의 재미를 알아갈 무렵, 무려 호주에 있는 도서관에 몇 안되는 ‘한국어 소설’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읽었던 것 같은, ‘빵가게 습격 사건’이 실린 단편 소설집이었다. 책을 집어든 자리에서 완독한 나는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천재구나.
그 후, 시간이 꽤 지나 코로나가 터져도 재밌는 소설은 조처럼 쏟아지지 않는다는 걸 실감할 때 쯤, 단비처럼 단편 소설집이 발행되었다.
‘일인칭 단수’
...?
이름 참 묘하다.
굳이 말하자면, 딱 떠올렸을 때 일인칭은 하나다. ‘나’ 그러니 단수일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생각하면 ‘우리’도 있나? 그렇다면 이건 오롯이 ‘나’ 를 의미하는 말이었을까.
일인칭. 단수.
‘나’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을 칭하는 말일까. 우리 중에 너만을 칭하는 말일까. 그렇다면 이인칭 아니라면 일인칭. 내가 보는 우리속의 너를 말한다면 일인칭 단수.
의미는 알 수 없으나 그 속에 첫 장을 읽었다.
‘돌베개에’
참 멋없는 이름이다 생각했다. 이 작가는 꽤 간결하게 소재를 짓는 경향이 있다. 다음 장의 제목인 ‘크림’이 나는 더 끌렸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우연히 하룻밤을 자게 된 한 여자에 대한 회상이었다. 그저 혼자 있기 싫어서 서로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하룻밤을 보냈던 그들은 그 전에도 후에도 같이 하지 않는다.
단카를 짓는다는 그녀는 지금 살아있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하며 죽음에 대해, 특히 쇠붙이로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그린 단카를 지었던 그녀를 회상하며 그녀가 어딘가에 살아있기를 바란다.
그녀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못생기지 않았고, 여자친구가 따로 있는 좋아하는 남자가 부르면 달려가 몸을 대주었으며, 그 남자는 그녀의 몸을 ‘끝내준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화자와 하룻밤을 보내며 그 남자의이름을 크게 외쳤다. 수건으로 틀어막은 그 이름은 그저 평범한 남자의 이름이었 것으로 기억한다.
화자도 좋아하는 여자의 이름을 불러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의 몸 속에 사정하고, 그와 그녀는 잠에 들었다. 다시는 보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아직 단카를 직고 있을까. 어딘가에 살아 있을까. 집에 가는 길, 너무 멀다며 하룻밤 자고 가겠다던 그녀. 캔 맥주를 마시고는 아무렇지 앟게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침대로 들어간 그녀.
그녀와의 하룻밤.
그 밤은 그에게 뭐였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 생각이 나 돌이켜볼 만큼 인상적이었던 하룻밤. 기묘한 사람, 기묘한 기억.
여자가 있는 남자를 좋아해 몸만을 원하는 걸 알면서도 가는 여자. 그녀는 말했다. ‘사랑은 마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누가 좋아서 저런 사랑을 하겠는가. 나중에 비참해질 것을 하면 후회할 것을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것은 호르몬이 만들어낸 정신병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궁금해졌다. 네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이제는 나를 어떻게 회상할지. 너는 그 과정에서 이제 나를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는지. 너는 나를 어쩌고 싶을까. 아직 나를 좋아할까?
스쳐가는 만남은 특이하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어떤 기대도 상상도 할 수 있다. 회상해도 괴롭지도 슬프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사건은 나의 하나의 선명한 사실적 기억으로 남는다.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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