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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Diary/에세이, 비문학

여행의 이유 by 김영하

Lamore 2020. 4. 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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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국내도서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9.04.17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 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은 원래 많이 읽는 편이었지만 그 때 까지만 해도 소설보다는 비 문학과 자기계발서에 관심이 많았다. 그 프로그램은 당시에 한참 읽고 있던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책의 저자인 유시민 작가가 출연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참 유시민 작가의 생각에 관심이 많던 나는 그가 집필한 책을 검색하여 모조리 읽는 중이었다. 그러다 「알쓸신잡」을 보고 김영하 작가를 알게 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책을 들어 본 적이 있었고 무엇보다 참 흥미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같았다.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는 '작가는 언어를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까먹고 싶지 않은 단어를 수첩에 적고 있었다. 그런 인상을 계기로 관심을 가질 무렵,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이 출간되었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은근슬쩍 홍보까지 하셨다.) 이 때 나는 호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가족에게 부탁해 「오직 두 사람」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는 신간이 나올 때 마다 꼭 사서 보게 되는 독실한 독자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격리생활이 시작되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주문했다. 무려 5년이나 호주에 머물면서 제대로 책을 돌아볼 일이 없었기에 많은 재미있는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길이 가는 책은 많지 않았다. 결국 김영하 작가의 책과 함께 책 5권 정도를 더 구입했다. 

 

이름에서 짐작한 것 처럼 여행에 관한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그에게 있어 여행의 의미와 여행자의 자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생각들이 가지를 타고 이어졌다. 얼마전에 난생 처음 홀로 뉴질랜드를 여행한 나로서도 여행의 의미를 생각하면 여러모로 사색에 잠기게 되곤 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피난 처 이며,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오락,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소재, 누군가에게는 혼자만의 동굴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이 모든것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어 한 여행에 담기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의 여행의 의미는 많이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는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곳이 주요 관광지로 급부상 한다. 지금은 코로나(COVID-19)의 유행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의 대다수는 여행에 환상을 가지고 살짝 미쳐 있었다. 이러한 환상은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하는데, 좋은 점은 어떤 여행일 지라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두 글자가 부여하는 자유와 휴식, 새로운 모험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일탈'이라는 인식을 준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일탈은 얼마나 달콤해 보일까. 나쁜점은 생각보다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는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주요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고, 하늘은 뿌옇고, 더리는 더럽다. 프랑스에 구수한 빵 냄새와 아름답고 이국적인 배경을 생각한 많은 관광객들은 거의 필히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좋은점은 그럼에도 그들에게 생각지 못했던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게 비록 인종차별과 같은 좋은 기억이 아닐지라도, 그런 경험 조자 부러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다. 인종차별을 당한다는건 다른 인종이 더 많은 곳에 여행을 갔다는 이야기니까. 사람들은 일탈을 꿈꾼다. 일탈이라고 표현하는 자유와 거기에서 오는 일상과 일탈의 균형을 잡고 싶어 한다. 사람은 기이한 동물이라 일탈을 꾸준히 하면 일상이 되고 다시 일탈을 하게 되는 끊이지 않는 순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사람은 어느정도 안전한 사회에서 이런 일상과 일탈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책에서 일컫는 여행자의 바람직한 태도는 Nobody라 한다. 그러고보면 저 말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한글이 없다. 마치 '사람이 재수없다'는 말을 정확하게 번역할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사회에 빈번하게 출몰하는 현상에 대해 편리한 말을 만든다. 마치 'Nobody'와 '재수없다'처럼 말이다. 자신을 낮추고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여행에 더 유리하다는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사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낮추고 싶지 않아도 낮추게 된다. 여행자로서 오지에 혼자 착륙한 나는 이곳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버스조차 검색하지 않으면 탈 수 없는 존재,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미리 예약한 숙소조차 가기 어려운 말이 잘 통하는 어린이가 된 느낌이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밤에는 이런저런 상상으로 과한 위기 감에 빠져 급히 숙소로 돌아가고는 했다. 낯선 도시의 밤에 혼자 어슬렁거리게 될 때 까지는 적어도 며칠이 필요했다. 이 책에 어떤 단락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은 이방인을 돕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떠난 후에도 인종차별과 언어의 장벽으로 느껴야 했던 온갖 수모를 전해듣고는 했지만 행운인지 무딘 탓인지 나는 단 한번도 인종차별을 당했다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남보다 조금 무딘 탓 일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호주에서 버스를 타려는데 왠 이상한 남자가 오더니 나에게 뒤에 있는 나이 든 여자부터 태워야 하지 않냐며 화를 내는 것이다. 그 여자는 그리 노쇠해 보이지 않았고, 본인도 손사래를 치며 이 상황이 매우 난감하다 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자는 내게 버럭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대답하고 여자와 그 남자에게 양보한 후 버스에 올랐다. 그 남자는 약을 한 건지 조금 문제가 있는 건지 언뜻 보기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 앞에 먼저 오른 다른 현지인들 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걸 보니, 어쩌면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버스에 오른 직후 맨 앞에 앉아있던 나이든 여자는 내게 그는 조금 이상한 사람 같다며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했다. 나는 전혀 괜찮다며 웃어보이고 버스에 착석했다. 어쩌면 동양인 여자이기 때문에 나에게 벌어진 이런 일은 누구나 타지에서 한번 쯤 겪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특별히 인종차별이라 느끼지 않는 것은, 그 남자가 이상했기 때문도, 그 여자가 내게 사과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들은 마주칠 수 있다. 단순히 타지의 이방인 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아무 이유 없이 술마신 노인에게 꾸중을 듣거나, 아무 이유 없이 내게 호통을 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물론 대중교통을 타고 있는 힘 없어 보이는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대상이 되었을 지라도 같은 종인 그들이 내게 인종차별을 행한 것은 아니다. 다른 인종이 했다고 그것이 갑자기 인종차별로 둥갑 하는 것은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행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자유'의 의미가 컸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이 산문에서 말하는 Nobody가 되는 것이 나는 좋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며 배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내가 무엇을 하든 신경쓰는 이가 아무도 없다. 나를 알아보는 이도 없고, 내가 간섭하는 이도 없다. 돈을 대가로 자유를 구입한 기분인 것이다. 호주에서 살면서 일년에 한번꼴로 이사를 다녔었다. 덕분에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나 새로운 방에 금방 적응하고 또 미련없이 장소를 떠나는 버릇이 생겼다. 안쓰는 물건을 잘 버리고 정리하는 것도 이 덕분에 생긴 습관같은 것이었다. 이사갈 때는 다 짐이 되니 말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여러 풍경을 보고, 산에 오르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라는 존재와 사실이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고 일을하다 스폰서를 받아 영주하게 된다면 나는 이 낯선 도시가 나의 삶의 터전으로 바뀔 것이며 여기에 있는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이 사람들은 나의 이웃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서 존재하고 호주에 있던 내가, 한국에 살던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특별하고 모두 모자라서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사실상 해외 여행이 봉쇄되어 있는 이 시국에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이번에는 한가한 자유인(백수)으로 국내를 사박사박 걸어볼까 싶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자문하고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여행에 대한 새로운 상념을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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