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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Diary/에세이, 비문학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by 글배우

Lamore 2020. 5. 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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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국내도서
저자 : 글배우
출판 : 강한별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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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알람이 몇번 반복되고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출근하는 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이폰을 확인했다. 7시 25분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출근하는구나. 그러고는 다시 뒤척이다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러다 10시쯤 다시 깨어 씻고 밥을 먹었다. 히가시노 게이코 작가의 <녹나무의 파수꾼>을 뒤척이다 언니가 퇴근길에 사오는 커피를 마셨다. 내일은 5월 5일, 하루 휴일이 생겼다. 주말이 끝나고 어제 막 한시간 반을 운전해 올라왔지만 하루의 휴일을 위해 다시 내려간다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본가에 도착하고 언니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여느때처럼 언니방에 우연히 놓여있던 책을 짚어들었다. 분명 그제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책은 시같은 산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적은 위로의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꿈을 쫓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한 사람들, 고생하는 사람들, 주저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초조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힘들었던 자신에게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공유하며 작가가 되어 상담소를 열게 된 마음 따듯한 글배우 작가의 위로가 있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많이도 초조하고 힘들어했던 과거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끝없이 하던 말이기도 했다. 대게 힘든 시간을 스스로 이겨내기위해 필요했던, 부여했던, 깨달았던 위로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 모두의 반대를 무릎쓰고 홀로 호주로 유학을 떠났었다. 한국 대학에 비해 비싼 학비를 지불해 주는 대신 다른 모든 비용은 스스로 부담하겠다고 떼를 써 온 유학이었다. 비자금도 없이 도착한 호주에서 집을 구하는 것부터 일을 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돈을 충당하기까지 약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 3-4개월은 한국에서 조금씩 모아놓은 용돈을 탕진하며 근근히 버티다 나중에는 한달에 $30 (2만 5천원) 으로 살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일주일에 소고기 샐러드 한끼를 소분해서 먹으며 버티었다. 전화할 수 없었다. 떼를 쓰고 온 만큼 여유가 생길 때 까지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돌아가더라도 내 돈으로 티켓을 살 수 있을 때 돌아가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덕분에 영양실조가 왔고 지금도 가끔 나를 괴롭히는 군집성 두통이 생겼다. 하지만 덕분에 바뀐 가치관이 내게는 더 소중했다. 

 

다소 힘들었던 유학생활은 내게 많은 변화를 안겨주었는데, 그 중 몇가지가 이 책에 있었다. 내가 너무너무 힘들 때,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을 때, 힘들어 죽겠어서 무너지고만 싶을 때, 앞이 막막할 때, 안그러면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신기하게도 전혀 괜찮지 않을 때 반복하며 되뇌이던 이 말은 나를 매 순간 무너지기 직전의 나를 지탱해 주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해주기를 바랐다. 괜찮다고, 다 지나갈거라고, 잘 하고 있다고.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이런 선택을 한 나를 안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고집스러웠던 나는 아무에게도 내가 이토록 궁핍하게 지내며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위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위로했다. 괜찮아. 다 지나갈거야. 

 

아마 내 또래의 아이들은 대부분 느낄 감정은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공부에 뒤처질까 불안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스팩이 뒤처질까 걱정하고, 휴학을 하거나 학점이 떨어지거나 방학을 온전히 쉬면서 보낼 때면 괜시리 불안해지는 마음. 크게 마음먹고 유학이라도 떠날라 하면,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일까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하게 되는 마음. 예체능에 마음이 끌려도 취미로만 해야한다는 유약한 마음이 자리잡니다. 어릴 적 부터 끝없이 경쟁상태에 놓였던 우리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폭력이다. 나는 이 사회로부터 도망친 사람이었다. 다행히 도망치는 걸 스스로 정당화 할 만큼 비겁했다. 유학을 할 때에도 이 불안감은 끊임없이 나에게 찾아와 되물었다. 너는 과연 잘 하고 있을까. 나와 같은 고민을 겪는 친구들이 불안감을 털어놓을 때 나는 이야기 했다. 괜찮아요. 이런 타지에서 살아가는 것 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대단해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런 불안감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해서 남들 다 받는, 내가 목표했던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연봉을 받고 나서야 불안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내가 했던 일이 틀리지 않았구나. 정해진 길은 없던게 맞구나. 나는 괜찮구나. 안심할 수 있었다.

 

대게 성격이 모난 사람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이해하는 삶은 한 때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사람일게다. 글로 아는 사람과 실제로 겪었던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삶이 힘들어서 그런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다.'라고 같은 말을 해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과 스스로 겪었던 이야기를 하는 자의 태도는 사뭇 다른다. 글로 아픔을 배운 사람들은 대게 그들은 안타깝게 여긴다. 그들을 글로 이해했지만 그런 그들보다 괜찮다고 태도가 묻어있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에 대해 건내는 아는듯한 말은 오만함이다. 이해했다는 착각으로 그들을 상처주지 않기를 바란다. 겪어본 사람들은 쉬이 그들에게 조언하지 않는다.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네가 상처가 많아서 그래.' 라는 아는 듯한 말보다 '괜찮아. 나는 너를 믿어. 너는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위로를 건낸다. 같은 말도 누구에게 듣는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저런 '너를 안다'는 듯한 말은 위로를 찾아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위로를 받겠지만,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이라면 되려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화자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대화는 상황이 부정적일수록 희박하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가 어떤 상황에 어떤 위로를 원했는지 기술한다. 스스로 고심하여 내린 답을 공유한다. 그리고 힘내라고, 괜찮다고 끝없이 말해준다. 화자는 청자를 위로하고자 한다. 그래서 따듯하다.

 

긴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참 젊은 나이에 쉬기를 자처한 나는 불안하지 않다. 이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고, 할 수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괜찮다. 이제는 내가 정당화하며 포기했던 그 길을 걸었던 모든 이들이 대단하고, 그렇다고 내가 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대단하다. 하지만 내가 대단하다며 칭찬하면 그들 중 반은 '네가 더 대단하지.' 나머지 반은 '포기하지 못해서 계속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언제든 포기해도 괜찮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포기가 두려운 것도,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내가 대신 짊어질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에 함부로 훈수를 두어서는 안된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간절히 조언을 바란다면 정말 조심스럽게 생각을 전하고, 다만 당신이 스스로 조금이라도 행복한 길을 선택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안부를 물어주고,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맛있는 걸 사주는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조금 더 따듯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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