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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Diary/에세이, 비문학

말을 어루만지는 책, 보통의 언어들

Lamore 2020. 9. 2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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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표지



나는 에세이보다 소설을 좋아한다. 에세이는 바로 옆에서 누군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 든다면, 소설은 영화를 보는 기분과 흡사하다.

아닌게 아니라 글을 쓸 때도 좋은 에세이보다 재밌는 소설을 쓰기가 더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에세이가 자신의 생각을 의식적으로 풀어가는 책이라면 소설은 나의 무의식에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에 가깝다. 처음 생각했던 구상과 아주 다르게 전개된다거나, ‘마치 머릿속에 들리는 이야기를 적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마도 의식적으로 구축한 이야기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는 또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간혹, 에세이를 찾을 때가 있다. 누군가 사람의 온기가 필요할 때, 특히 차분하게 조용히 털어놓을 곳이 필요할 때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주로 삶에 조금 지치거나, 시끄러운 사회로부터 눈을 돌릴 때 많이 찾게 된다.

에세이는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구축되었기에 호흡이 그리 길지 않다. 물론 ‘스물 아홉 생일, 1년후 죽기로 결심했다.’ 같은 장편 소설과 흡사하리만큼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글도 있다. (언젠가 이 책에 대해서도 쓰고 싶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에세이다.) 하지만 대게는 어떤 소재나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을 묶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요즘에 본 에세이 들이 그랬다. 여행의 이유 라던지, 오래 준비해온 대답 이라던지, 이번에 읽은 김이나 작사가의 ‘보통의 언어들’ 이라는 에세이도 그렇다. 비교적 호흡이 짧은, 그래서 언제든 부담없이 이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 제목을 보고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떠오른 건 아마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직접적으로 ‘언어’라는 단어를 표지에 담고 있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리고 꽤 인상적이다.
‘언어’라는 단어를 쓰는 만큼 이 책은 ‘언어’에 대해 다룬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언어속에 담긴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나 언어가 자아내는 느낌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퍽 흥미롭다. 언어를 섬세하게 다루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가 쓰는 말 하나하나 나의 심리와 태도를 대변해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을 쓰는 글이니 만큼 그 모든 말에 공감이 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해할 수 있게 쓰여 있다. 애초에 설득이나 설명을 위해 쓴 글이 아니라는 점도 에세이에 장점 중 하나다. ‘강요받는 느낌’이 없어 거부감도 덜하기 때문이다.

마음편히 쉬고 싶을 때 책을 읽는 것은 이토록 누군가를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위로받는다’는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언어의 온도와 다른점은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케 한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사회생활을 하며 무례한 말을 하고 들을 일이 거의 없어져 버렸지만,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형성하고 그 안에 소속되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환경 덕분에 겪게 되는 무례함이 있다.
무례한 사람은 안보면 그만이지만, 학교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대지 마’ 라는 말이 그렇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단 한번도 들은 적 없는 말을 학창시절에는 왜들 그렇게 하고 다녔는지. 아마도 성향이 다른 아이들을 한대 모아 놓으니, 한 집단에서 구별되는 성향을 가진 아이가 그렇게 보이는 것일 태다. 크고 나서는 자연히 자기 성향에 맞는 집단으로 서서히 분류되고 그들과 소통하게 되니, 당연히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었던 이들이 그들의 집단에서는 평범 할 수 있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저 말이 가지고 있는 비겁함과 교묘함을. 한 사람을 오바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발언을 묵살시켜 버리는 저 말은, 어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화를 내기에도 비속어가 아닌 ‘조금 저급한 의사표현’ 정도로 치부되기에, 사람을 무시하는 주요 수단이 된다. 책에서도 말했듯,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나오지 않을 말이라는 것도 너무나 확연해서, 들을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던 건 그런 세세한 이유를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히 그런 의도와 감정이 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느 책이 그렇듯,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말과, 생각할 수 있었던 관점도 찾을 수 있다.

책에 꽤 뒷부분에 나오는 ‘사랑’이 그렇다. 라디오의 기록을 모아 낸 부분인데, 사랑은 그 경험에서 어느순간 내가 외면하고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비춰주어, 나를 깨닫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다.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 경험을 곱씹어 생각하지 않으면 내릴 수 없는 결론이다.
그런 말이 있다. 비슷한 일이 내 삶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그건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물론, 매번 새롭게 만나는 애인이 바람을 피는데 그게 내 탓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유독 그런 사람을 고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끌리는 요소들을 찬찬히 돌아보면 바람기가 다분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곁을 내준다거나, 꽂히면 주위 상황은 물불 안가리는 사람이라거나, 너무 금방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버리는 사람이라거나 말이다. 혹은 그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구에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옥죄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많이 흔들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유가 뭐든 간에 자신을 타박할 필요는 없다. 이런 반복되는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더 이상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방안. 그 이상은 굳이 필요치 않다.


그러고보니 최근 명상에 도전한 적이 있다. 친구가 ‘거울 명상’이라는 걸 추천해서 아주 오랜만에 명상을 했는데, 마침 명상에 대해 쓰여 있었다.
사실 어떤 명상이냐는 크게 중요치 않은 것 같다. 명상의 공통점은 잡생각을 버리고 나에게 집중하도록 도와준다는 데에 있다.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도출되는 결과는 물리적 본인을 투과(잊는다고 표현되기도 한다)하여 본질적, 관념적인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뭐 말처럼 잘 되지는 않지만, 가끔 시도해보면 꿀잠을 자는데 도움이 된다. 본래 집중력과 잠드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은 반비례한다고 하니까.


사실 이 책을 읽고 한 생각에 대해 서술하자면 책 한권은 쓸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그많큼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망라하는 생각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책 뒤쪽에 있는 ‘추천사’를 읽으면 이 책이 주는 전반적인 느낌이 깔끔히 묘사되어 있다. 나 또한 그러했고, 독자들이 느끼는 대략적인 감상이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여담으로, 책에 마지막 즈음, (아마도) 직접 작사한 가사가 정리되어 있다.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 짧은 구절에 누구나 공감하는 마음을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다른 어떤 글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왜 우리나라 가요의 가사에는 심심치 않게 영어가 들어가는 걸까?
마치 팝송을 부르다 한국어가 튀어나오거나 라틴어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듯한 어색함이, 음을 쏙 빼고 글로 접하니 그대로 다가왔다.

오롯이 한글로 지어진 예쁜 가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책을 덮을 때 쯤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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